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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베르사유]마리 앙트와네트를 만나러 간다 본문

유럽여행일기

[프랑스/베르사유]마리 앙트와네트를 만나러 간다

밤주막 2011. 2. 25. 21:40
베르사이유 궁전을 향하여 길을 나서는데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다
비가 오더라도 예약된 일정에 미룰 수는 없는 일
하루 짜리 5구역 지하철 패스를 샀는데 역무원이 아들 표는 3구역용으로  표를 잘못 주었다
이미 기차에 탑승을 한지라 어찌 되겠지 하고 베르사유역에 내렸는데
아들이 역무원에게 잡혔다
손짓 발짓으로 같이 샀는데 너희 잘못으로 이렇게 됐다고 설명하니 그냥 통과 시켜 두었다
베르사유에 도착하니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입장객을 제한한다는 얘기를 들은지라 서둘러 줄을 서고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많은 비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정원은 오후로 미루고 내부부터 관람
비가 오지 않았다면 자전거를 빌려 마음껏 베르사유의 숲속을 돌아 볼텐데...

 
베르사유 궁전에 대해서 먼저 공부를 해보자
파리의 남서쪽 22km 지점에 위치하며, 17세기 말~18세기에 지어진 부르봉 왕조의 호화스러운 궁전과 정원으로 유명하다. 궁전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도로가 뻗어 있는데, 특히 3줄의 아름다운 가로수가 있는 큰 도로에서 휘황찬란했던 절대왕정의 자취를 엿볼 수 있다. 베르사유궁전의 기원은 17세기 전반 수렵을 즐겼던 루이 13세가 고요한 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을 수렵장으로 만들고 작은 성을 지은 것에서 비롯한다. 그 후 루이 14세가 1661년 건축가 르보, 실내장식가 르 브룅, 정원예술가 르 노트르 등을 초빙하여 50년이라는 긴 세월과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 궁전을 지었다. 1672년 왕궁을 이곳으로 옮기자, 베르사유는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문화?사교의 중심이 되었다. 루이 14세 시대는 황금시대를 이루었으므로 베르사유의 명성은 높았으며, 빛나는 고전주의 문화의 전당으로서 자리잡았다.

그 후에도 증축, 개축되었으나 프랑스혁명 초에는 혁명의 무대가 되어 도시가 황폐화되었다. 1837년의 왕정복고 후 왕궁은 L.필립에 의하여 박물관이 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역사적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후 프로이센 왕이 독일 황제로서의 즉위식을 거행하였으며, 제3공화정 초기의 의회가 열렸고, 1919년 6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강화조약의 조인이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정원은 전형적인 프랑스 정원으로,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데다가 수로와 샘물이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자연을 인간의 예술에 복종시키려는 서구사상을 엿볼 수 있다. 주변에는 루이 14세의 별궁이었던 그랑트리아농(Grand Trianon)과 마리앙투아네트가 거주했던 프티트리아농(Petit Trianon)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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