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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여행] 13억의 심장부 북경을 가다 본문

중국여행일기

[북경여행] 13억의 심장부 북경을 가다

밤주막 2011. 3. 11. 14:41

중국에 정착해서 첫번째 여행은 역시 중국의 수도 베이징으로...
대련에서 저녁 5시에 출발하는 특급열차에 몸을 실고 12시간을 달리면 새벽 5시경 베이징에 도착합니다
처음 타보는 중국 기차는 특콰이로 좀 비싸기는 했지만 많은 돈을 지불한 만큼 쾌적한 2인실 침대방이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아들은 어린이표를 샀는데 2인실이라 한사람은 따로 떨어져야 했습니다
몰래 아들을 침대칸으로 불러 같이 가는데 근엄하기만한 승무원이 말도 안통하는 외국인과 실강이 하는게 싫었는지 그냥 2인실에 셋이 가는 것을 눈감아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하지 못한 12시간의 기차여행. 중국은 워낙 넓은 나라이다 보니 12시간 정도는 긴여행이 아닙니다. 이후에 중국여행에는 24시간 기차도 몇번 탔었으니까요

1인 6만원 정도에 2인실 침대칸은 신혼여행때 사용해도 될만큼 깨끗하고 보안이 철저했습니다.
신분증과 기차표를 승무원에게 맡기고 좌석번호가 쓰여진 카드를 받았습니다
외국인은 여권이 꼭 있어야 합니다. 준비한 컵라면과 김밥으로 저녁을 대신하고...열차에는 칸마다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이 있어 커피에 컵라면 너무 좋았다는.... 
도난은 없을 듯 했지만 문은  걸어 잠그고 먹고 마시고 잠자다보니 어느새 북경역. 


12시간의 기차여행은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북경역에서 가까운 천안문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른 아침인데도 중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천안문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우리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천안문 광장에서 기념촬영에 동참하고 자금성이 열리기를 기다립니다.
자금성(고궁)은 8시30분 개장 입장료 1만원정도(지금은 더 비쌀듯)

중국 여행을 하려면 건강한 몸이 기본입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넓고 규모가 크다보니 걸어서 보는 것도 차를 타는 거리 정도라서 좀 더 건강할때 
여행해 보는것이  좋습니다. 
또한 패키지여행이 아닌 저처럼 배낭여행일 경우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중국여행은 되도록 패키지여행을 권하고 싶습니다.
여행의 목적에 따라 틀리겠지만 중국은 입장료와 차비가 많이 드는곳 입니다.


영국의 대사가 중국 황제를 알현하려고 자금성의 8개의 문들을 통과하다가 중국 넘보는 것을
포기했다는 일화가 있다죠. 정말 규모에 압도 당했습니다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웅장함이 돋보이며 자금성의 진가는 하나하나의 조각품과 
장식들 입니다. 
문고리와 돌조각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것 만으로도 입장료가 아깝지 않습니다. 
화려한 돌기둥과 조각들을 보면서 소박하며 섬세한 우리 예술품의 아름다움이 우리 현실에
맞도록 발전했다는 느낌입니다. 

관광객 입장이라면 우리의 경복궁이나 비원이 훨씬 보기에 편안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구경도 구경이지만 다리가 너무 아파서...


베이징 자금성

명·청 500년을 통치한 24명 황제의 거처

'그는 또 수많은 뜰을 건너가야 한다. 그 많은 뜰을 다 지났다 해도 새로운 계단을 만나게 되고, 다시 뜰을 지나고 또 다시 다른 궁전을 만나게 된다. 끝없이 몇 백 년, 몇 천 년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황제가 파견한 사절은 결코 그곳을 빠져나갈 수 없다.' 권력의 고독을 다룬 프란츠 카프카의 <황제의 메시지>에 나오는 ‘그곳’은 바로 쯔진청이다. 8백 여 개의 건축물과 9천 여 개의 방이 있는 곳. 10m에 이르는 높은 성벽과 50m 너비의 거대한 해자로 에워 싸인 그곳은 카프카의 말 그대로 드넓은 뜰과 수많은 건물로 지어져 빠져 나올 수 없는 미로다.

쯔진청은 명·청 때 500여 년간 24명의 황제가 살았던 궁전이다. 명나라의 3대 황제 영락제는 권좌에 오른 지 4년째 되던 1406년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고 만리장성 이후 중국 최대의 역사라 불리는 쯔진청 쌓기에 나섰다. 이후 14년간 100만 명의 인부가 이 공사에 동원됐다. 사용된 건축 자재의 양도 상상을 초월해 벽돌 1억만 개와 기와 2억만 개가 사용됐다. 기둥에 쓰일 나무는 사천지방에서 조달된 것으로 운송에만 4년이 걸렸다. 전각의 받침대와 부조에 쓰인 돌은 5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날랐다. 돌은 하나의 무게가 200톤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당시 부역자들은 겨울철 길에 물을 뿌려 빙판을 만든 뒤 돌들을 날랐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쯔진청에는 황제 일가를 위해서 9천 명의 시녀와 1천 명의 내시도 함께 살았다.

하늘의 아들, 황제를 위한 자색
쯔진청을 가득 메운 자색은 기쁨과 행복을 상징하는 빛깔이며, 동시에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을 상징한다. 북극성은 하늘의 궁전이 있는 곳. 하늘의 아들 즉 천자인 황제가 사는 궁전 역시 그 하늘을 상징하는 자색으로 지었다. 남과 북의 긴 축 위에 놓인 쯔진청의 건축물들은 모두 남향이다. 이는 남쪽의 양기를 받고 북쪽의 바람과 음기로부터 황궁을 보호하려는 의도다.

성 내부는 정무 처리를 위한 구역(외조)과 황제의 주거 구역(내정)으로 크게 나뉜다. 남쪽에 있는 외조는 쯔진청의 정문인 오문에서 시작된다. 북쪽 방향으로 태화문·태화전·중화전·보화전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동서에 문화전·무영전 등의 전각(殿閣)이 있다. 높이 35m, 면적 2377㎡의 웅장한 태화전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당나라 때에는 주요 의식이 치러지던 곳이다. 태화전의 앞마당에는 병사 9만 명이 모일 수 있는 넓은 뜰이 있다. 외조의 북쪽으로 내정이 펼쳐진다. 내정의 주요 건축물로는 건청궁·교태전·곤녕궁 등이 있다.

쯔진청은 철통 같은 보안으로 황제를 지켰다. 바닥에는 걸을 때 경쾌한 발소리를 내는 특별한 벽돌이 갈려 있다. 이 벽돌의 효과는 음향만은 아니었다. 땅 밑에서 뚫고 올라올지 모를 침입자를 막기 위해 40여 장의 벽돌을 겹쳐 쌓았다. 성 내에는 후원을 제외하고는 나무가 전혀 없다. 암살자가 나무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자의 거처지만 어쩌면 금으로 둘러 싸인 감옥이었는지도 모른다.

쯔진청은 1949년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뒤에야 비로소 일반에 공개됐다. 과거의 궁전이라는 뜻에서 공식 명칭은 ‘고궁’이 되었다. 왕조는 사라졌지만 해마다 600~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쯔진청은 여전히 중국 문화의 중심으로 위용을 떨치고 있다.<출처: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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