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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발견

왕가의 휴식처 창덕궁 후원

밤주막 2012. 10. 20. 12:16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와 걷다 보면 웅장한 돈화문과 마주 친다

예전 일본넘들이 비원이라 바꿔 불러 비원이라는 이름이 더 많이 알려졌던 창덕궁의 정문이다

창덕궁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여기를  위키백과 

 

 지하철 3호선 3번 출구로 나와 현대빌딩을 지나면 바로 보인다

눈내리는 날의 창덕궁 후원은 데이트 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평소보다 사람도 뜸할뿐더러 해설사의 토끼몰이도 이런 날만큼은 설명보다는 풍경을 즐기라는 듯 말수를 줄였다

개인적으로 돌아볼 수는 없고 안내를 해주는 문화해설사를 따라서 정해진 구역만 볼수 있는 것이 흠이지만

영어 일어 중국어 투어가 시간대별로 있으니 외국인 친구를 동반하기도 좋은 곳이다

 

돈화문에서 시작하여​ 함양문을 지나 부용지,불로문,옥류천을 지나 연경당을 돌아 돈화문으로 나오는 약 한시간의 코스이다

외전과 내전은 개인적으로 관람이 가능하지만 후원은 단체로 움직여야 하고 따로 관람권을 구매해야 한다​

내전을 지나 후원으로 가는 언덕이다 창덕궁 후원 예약은 여기를...  창경궁

 

창덕궁의 후원은 왕가의 휴식과 산책을 위한 곳이지만 여러가지 다른 용도로 사용하였다

자연 풍광을 느끼면서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는 것은 물론 과거시험을 비롯한 갖가지 야외행사가 이곳에서 열렸다

조선 초기에는 왕이 참관하는 군사훈련과 활쏘기 행사도 열렸다

부용지에서 낚시를 하거나 배를 띄워 꽃구경을 하기도 했으며 임금이 주관하는 잔치도 여기서 열렸다

또한 임금은 이곳에 곡식을 심어 농사를 직접 체험하고 왕비는 양잠을 직접 시행하는 친잠이라는 행사를 열리던 곳이다

 

부용지(芙蓉池) 

부용지(芙蓉池)와 부용정(芙蓉亭)

조선의 궁궐 연못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사상에 의해서 조성되었다.
부용지도 땅을 상징하는 네모난 연못 속에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섬을 만들었다.
연못의 동남쪽 모퉁이 돌에는 뛰어오르는 형상의 물고기 한 마리가 새겨져 있다.

부용정(1792년 건립)은 十자형을 기본으로 하되, 남쪽으로 양쪽에 한 칸씩 보태 다각을 이루고 있는 독특한 형태의 정자이다.
1795년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을 기념하여 화성에 다녀온 뒤 너무 기쁘고 즐거워서 부용정에서

규장각 신하들과 낚시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창덕궁 해설서 참조)

 

 

 

주합루(宙合樓)와 어수문(魚水門)

주합루는 정조가 즉위한 1776년에 창건한 2층 누각이다

아래층에는 왕실 직속 도서관인 규장각을 위층에는 열람실 겸 누마루를 만들었다

규장각은 [문장을 담당하는 하늘의 별인 규슈가 빛나는 집] 이라는 뜻이고

주합루란 [천지 우주와 통하는 집] 이란 뜻이다

높은 언덕 위의 주합루로 오르는 정문 어수문은 임금을 물에, 신하들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군신의 융화적 관계와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다]는 격언과 같이

통치자는 항상 백성을 생각하라는 교훈이 담긴 문으로 정조의 민본정치 철학이 담겨 있다

 

부용정(芙蓉亭)

주합루로 오르는 정문 어수문은 임금이 그 옆의 작은 문은 신하가 이용하는 문이다

부용정(芙蓉亭)

부용정(芙蓉亭)에서 바라보는 부용지(芙蓉池)

주합루(宙合樓)와 어수문(魚水門)

 

부용지에서 연경당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기오헌(寄傲軒) 효명세자가 지은 건물로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건물이다

효명세자는 아버지인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하면서 안동 김씨의 세도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이때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 할아버지인 정조였으므로 주합루 뒤쪽에 집을 짓고 이곳을 나라 일을 생각하는 장소로 삼았다.
효명세자는 1830년 대리청정 3년 만에 22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후에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다. 

 

 

사대부 살림집을 본떠 만든 조선 후기의 접견실이었던 연경당

1828년(순조28년) 왕세자였던 효명세자가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궁궐 안에 지은 120여칸 민가형식의 집이다.
대문인 장락문(長樂門)은 달에 있는 신선의 궁궐인 장락궁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주자가례(朱子家禮)를 따라 주인대감의 일상거처인 사랑채와 안주인 등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로 나뉘어져 있다

 

 

 

 

 

이 담장 너머에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살았던 낙선재가 있다

 

진눈깨비가 시야를 가리고 질척거리긴 했지만 서을 한복판에 이러한 궁궐이 있는 것이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영친왕과 그의 부인 이방자 여사가 생을 마감했던 보물 제1759호인 낙선재도 있으니 한번쯤 들려보는 것은 어떨까... 

눈내리는 창경궁의 모습은 다음 포스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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