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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美人) 고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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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美人) 고은

밤주막 2011. 2. 21. 23:17

미인(美人) / 고은

신주문(神舟紋)의 구리거울 뒤쪽에 궁녀 삼매화(三昧華)의 얼굴이 방금 죽었다가 살아난 듯이
은은하게 비치자 그녀는 그 거울을 놓아 버렸다.

정작 거울을 들여다 볼 한동안은 그때부터인 셈이다.
“예쁘다는 것, 이게 뭐야.”

그녀는 중얼거렸다.

매달린 거울은 거울 자체가 듬직한 추가 되어서 곧 제자리의 허공에 드리워졌다.
아름다운 얼굴이 없어졌다. 드리워진 구리거울 두 개 중의 하나다.

언젠가 늙은 환관(宦官)이 왕비에게 전갈이 있어 황급히 마루에 오르다가 거기에 이마를 받은 일도 있었다.

내전 영화전(迎和殿) 뜰에는 흰 모란이 넘치도록 피었다.
그것은 꽃이라기보다 차라리 장원정(長源亭) 시회(詩會)에 실어 간 술이었다.
꽃이 그렇게 술로 취했다.

모란 향기는 영화전 담 너머 큰 화단에서까지 몰려와 합쳐지므로 모든 숨쉬는 것들의 가슴과도 남남이 되지 않고 한덩어리가 되어 버린다.

삼매화는 또 중얼거렸다.

“마마께서 살아 계시면…… 이승에 살아 계시면 이런 날은 향 공양(香供養), 꽃 공양으로 수라조차 물리치시고 그냥 내내 서 계실 거야. 슬프고 슬픈 마마.”

바로 어제 왕비의 49재가 귀법사(歸法寺)에서 사흘 동안의 범패소리로 자욱하게 이어지다가 회향(回向)했다.

왕사 태야당(太夜堂)이 회주(會主)로 베풀어진 그 재에 궁중 사람들을 몽땅 떠다가 그 으리으리한 절간에 옮겨 놓았던 것이다.

거란 떨거지 한테 한참 시달리는 왕은 마지막날 회향 때 잠깐 들렀다가 꼴사나운 거란 사절을 달려기 위하여 급히 가 버렸다.

왕은 자살한 왕비의 죽음 때문에 왕비가 손수 수놓아 만든 경직도(耕織圖) 병풍을 뒤로하여 앉아 있을 때도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동강 이남의 여러 고을 생민(生民)들까지 봍잡혀 가고 그곳의 산전(山田)들도 곡식과 함께 초토가 되어 버렸다.

바야흐로 요동땅의 정세가 부산나케 움직여지고 있었다.
그런 사실이 거란의 고려 침략으로 나타난 것이다.
산야는 좀처럼 회복할 수 없는 깊은 상처들을 남겨 놓은 것이다.

왕에게 있어서 그의 군사와 백성 그리고 영토를 쪼개어 준다는 것은 왕위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될 만한 일이다.

그러난 역대 왕들이 그렇듯이 이 중년의 왕 역시 왕위를 떠날 생각이란 없다.
그 생각이 없는 대신 가뜩이나 왕비까지 자결해 버린 쓰라림은 여간해서 아물어들 것 같지 않다.

왕이 밤마다 불시에 왕사를 부르거나 혼자 침전 뒤의 내불당(內佛堂)에 가서 원불(願佛) 앞에 주저앉아 염불 몇 마디 중얼거리는 일 따위를 보면 젊은 왕자 시절의 사냥터 용맹 따위의 자취는 온데간데없이 허약해졌다.

무엇보다도 역적 왕규(王規)의 외척 반란을 진압하고 왕규의 목을 자르던 결단은 그 결단 이래로 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소매가 좁은 상포(緗袍) 차림으로 뜰이나 오락가락하는 모습은 내시들이나 시위군 갑사(甲士)들의 한숨거리까지도 되는 것이다.

“대승은 어디 갔어? 왕대승 없으면 이 몸이 캄캄하다.”

왕은 자나깨나 왕식렴 타령이었다.

본디 서경의 진장(鎭將)이었던 왕시렴은 이제 왕과 떼어 놓을 수 없는 맹우(盟友)이며 무엇보다도 거란 침입을 막아낼 광군사(光軍司) 병력 30만을 선치(選置)하는 데 놀라운 솜씨를 보여 주었다. 아니 그런 일만으로 왕의 신임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왕권의 계승을 위하여 해일에라도 견주어질 외척의 세력을 때려부수고 부왕 태조와 맏형 혜종의 개국 사직을 그 자신이 이어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그들 사이의 정치적 우정은 자못 깊은 바 있다. 그들은 이미 군신의 차이를 떠나서 생사를 함께한다는 결의까지 한 처지였다.

거란이 마헐탄馬歇灘(압록강)의 여진족 첩자를 꾀어서 서경에까지 육박한 것은 왕과 식렴의 서경 천도에 대한 끈질긴 집념까지 손상시켰다는 데에 그들 자신의 좌절이 역연하다.

“마헐탄 북계에 이르러야 이 나라가 비로소 나라다운 나라뽄새가 되렷다. 아니 동명성대東明聖代의 옛땅을 이 몸이 디디어 보아야 파루 치는 새벽 순라한테도 면목이 있으렷다. 헌데…….”

왕은 자주 이런 투의 환상적인 넋두리를 광국익찬공신匡國翊贊功臣 왕식렴에게 들려주어야 마음이 놓였다.

왕은 그런 말을 깊은 생각으로 들어 주는 식렴을 대할 때마다 그가 북녘 요동벌판의 안시성지安市城趾에서 멀리 요하가 흐르는 석양 무렵의 감회를 꿈꾸는 것이다.

이어서 몇십만 군사를 이끌고 서경의 재성在城 나성羅城을 다 내려다볼 수 있는 만수대에 개선하는 것도 어린애처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왕은 이런 꿈이 그가 믿는 지덕쇠왕설地德衰旺設에 의존하고 있는 사실을 그 자신도 모르고 있다. 그는 이른바 대업만대大業萬代를 산과 물이 저절로 갖다 주는 것으로만 아는 어리석음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그동안 왕은 어렵사리 즉위한 지 두 해가 지나자 즉위를 전후한 긴장을 다 풀어 버렸다.

그의 음풍농월은 뒤의 문신 귀족들에게 싹수머리 없는 송부宋賦 시늉의 글장난을 일삼게 하는 첫 모형이 되고 말았다.

부왕 태조의 종제從弟인 식렴이 태조 현릉顯陵의 행가幸駕 때 개풍고을 평민의 딸을 갖다 바친 것이 왕이 그렇게도 총애하던 젊은 왕비였다.

왕비는 싱그러웠다. 처음에 궁녀로 입궐해서 얼마 동안 있다가 느닷없이 왕비로 솟아오른 것이다.

그것은 후사가 없는 왕후가 망측하게도 간질에 걸려 폐인이 된 뒤의 일이다. 왕비 간택은 왕의 아우 소昭(光宗) 이외에는 여러 공신들의 한결 같은 지지를 얻었다.

첫째 한낱 개풍고을의 평민 소생이라 부왕의 정략혼인에 의한 외척의 발호라는 후환에 아무런 걱정도 없기 때문이며 왕비의 아름다움은 만월대의 누구에게도 찬탄의 대상이 되어서 그 아름다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한동안 왕은 장원정의 놀이도 그만두고 왕비의 영화전에서 나랏일을 결재하기 까지 했다. 그러나 왕비는 이토록 영화를 다하는 행운이었건만 웬일인지 궁중생활에 대한 혐오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왕과 왕비 사이는 거짓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만월대에서는 꽃밖에 참다운 것이 없구나.”
“내가 먹는 밥, 내가 입는 옷 이 모두가 다 거짓되고 죄 되는구나.”
“나는 이곳에 와서 상감마마를 섬기기 시작한 이래 대낮이 싫다. 그러니 오죽이나 이 만월대의 달밤이 좋으냐.”
“궁중은 사람이 숨쉬고 살 데가 아니구나. 아 백성만이 사람 사는 본本이구나.”

왕비가 왕비로 간택된 직후 그의 생향生鄕인 개풍고을에서 데려온 재종 동생 삼매화는 우선 궁녀 신분으로 들어앉혀서 말벗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장차 또 하나의 왕비가 곧 삼매화라고도 했다. 개경으로 그녀들이 오기 전에는 겨우내 가마니치기 새끼꼬기로 어유 등불 아래서 밤을 샌 사이였다.

그들은 고향 산천이 그리워서 이따금 다른 궁녀들과 미복 차림으로 동문 밖의 적전籍田들판이 펼쳐진 달밤을 거닐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왕비는 그의 재종 누이 삼매화한테 못할 말이 없다.

누가 들으면 바로 사약賜藥 폐비廢妃 처분이 내려질 그런 엄청난 소리도 속 후련하게 쏟아 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그런 왕비가 시름시름 앓다가 꿀물에 앵속을 타 먹고 죽어 버린 것이다.
그녀 스스로 사약을 택한 셈이다. 삼매화는 왕비의 장례가 쉬쉬 끝난 뒤에도 초칠일 동안 금식했다가 겨우 미음을 먹기 시작해서 칠칠일인 49재 무렵에는 다시 옛모습을 찾았던 것이다.

귀법사 49재에 잠깐 들어와 천도薦度 법문을 듣고 있던 왕의 눈길이 여기저기를 흘러다니다가 삼매화한테 딱 멎었던 사실 때문에 그녀는 가슴 가득히 궂은 밤 도깨비 방망이질로 채워졌던 것이다.

그녀는 죽은 왕비와 함께 영화전의 관음觀音 이었다. 왕비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그리하여 보현원普賢院의 지공화상指空和尙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 영화전 내불당 법회에 다녀갈 때마다 왕비한테 “삼매화는 마랑부관음馬郞婦觀音 후신後身인가 하옵니다.”라고 말하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송했던 것이다.

죽은 왕비는 그녀를 왕비가 되게 한 대승 왕식렴을 도리어 싫어했다.
서경 천도를 왕으로 하여금 서두르게 하는 장본인이 바로 식렴이기 때문이다.
천도는 막대한 사업이다.

첫째 서경의 왕성을 새로 지어야 하고 그 서경을 방비하기 위해서 북진北鎭의 여러 성도 쌓아야 한다. 수많은 정부丁夫가 징발되고 개경의 민호民戶도 옮겨야 했다.
부역이 끊일 사이가 없었던 것이다. 국고가 탕진되었다.
축성築城과 군사軍士 유지는 다른 일에 눈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왕비나 삼매화는 그들의 고향 개풍의 임진나루에서 다시 한번 서경으로 가게 되면 고향이란 이제 구름 밖의 고장이 되고 말기 때문에 궁중생활에 정을 붙이지 못한 그들로서는 서경 천도가 절망을 낳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은 여자이기는 하나 그들 역시 크나큰 정치적 사업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
“삼매화, 우리는 한낱 아녀자로구나. 나라가 큰 곳으로 경륜을 펼쳐야 할 때 겨우 고향에나 착着하고 있다.”
“마마, 하오나…….”
“마마 마마 소리 이런 때만은 거둬라. 언니 언니가 좋질 않느냐.”
“…….”

“아무래도 우린 예민隸民의 딸인가 보구나. 태어난 땅이 왜 이다지도 내 가슴속의 아픔이 되는지. 아버님께서는 은수恩數 별사別賜를 받으셨다 하나 그 땅을 마을에 나눠 주셨다는 소문뿐 어찌 지내시는지. 아버님 고집도 내 고집이시지. 왜 개경으로 초치해도 아니 오시고…… 으악새 모깃불이나 제대로 피우고 주무시는지…….”
“언니!”
“삼매화한테는 안되었다. 걱정하고 그리워해 줄 아버님조차 너한테는 아니 계시는구나.”
“언니!”
“예쁘고 예쁜 우리 삼매화, 너 없이 어찌 내가 이곳에 누워 있겠느냐.”

병상에서 왕비가 흘리던 이런 얘기들이 떠오르는 오늘따라 삼매화의 눈언저리를 적시기에 알맞다. 모란 향기는 결국에는 너무 짙다.
왕비가 귀법사에서 다비茶毘에 붙여져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돌아간 뒤 삼매화의 아름다움은 요염해졌다.
말고 깨끗한 아름다움이 전혀 다른 아름다움으로 바뀐 것이다.

역술易術이나 신무神巫의 힘이 그녀의 아름다움에 뒤섞여서 아름다움이란 엄청난 다른 값어치로 바뀌어 버리는 것 같았다.
아니 그녀 자신의 몸 안에 신이 들어 버린 것 같았다.
새벽 먼동이 트기 전 머리를 감기 위해서 그녀의 칠보죽잠七寶竹簪을 뽑았을 때 삼단 머릿단이 풀어진 모습을 누가 보았다면 밤새 신무神舞를 추어댄 요염한 신딸이라고 아니할 사람이 없으리라.
그녀는 극히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이야말로 백년의 원수를 갚기 직전의 새로운 원한이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삼매화의 몸이 회복된 사실은 그녀가 왕비가 죽은 뒤의 충격으로 누워 버린 일보다 금원禁苑 안에 재빨리 알려졌다.
이제는 왕비에 대한 관심이 삼매화에게 모조리 옮겨진 것이다.
그녀가 영화전 별궁의 처소로 돌아가서 간략한 저녁 약석상藥石床을 맛도 없게 물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왕의 원덕전元德殿에서 내의성內議省 密旨로 전갈이 왔다.
상감마마께서 삼매화를 급히 오랍신다는 것이다.
그녀는 조용히 일어섰다.
새삼 얼굴을 매만질 필요도 없다. 방금 저녁 단장을 끝냈기 때문이다.
그녀를 따르는 별궁 궁녀들도 허공에 나비 날 듯이 하늘거렸다.

등롱燈籠 연화등이 앞뒤로 밝혀져서 난만한 행렬이 되었다.
궐내는 회랑투성이고 문투성이였다. 돌고 돌고 또 돌아가야 한다.
원덕전 침전에 이르렀을 때 삼매화 일행은 벌써 땀기운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내시에 안내되어 삼매화는 왕 앞에 큰절 이배二拜를 드렸다. 불식佛式이었다.

“마랑부관음이 왔구나. 머리를 들어라.”

왕은 아마도 수라상 반주 때문인지 약간 취흥이 있었다.
“머리를 들어라.”
“황공하옵니다, 마마.”
“내 슬픔이 네 슬픔보다 덜하도록 네가 슬퍼했구나.”
“……마마.”
“내가 오늘밤은 너와 함께 나랏일을 말하고 싶다. 대승은 거란 사절을 바래다 주러 멀리 패수 영청현永淸縣까지 납시었구나. 삼사三師라야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밖에는 할 줄 모르는 공록대보空綠大保야…… 내 진작부터 네 지모가 어질다는 소리를 귓밥이 닳도록 들어왔다.”

삼매화는 몸둘 바 없었다.
그러면서도 왕의 구슬픔을 띤 수작에 그녀의 몸은 소름이 번졌다.
고려사에 쓰여진 ‘천성강의天性剛毅 고집불이固執不移’가 어느 정도 숨겨져 있는,
아무리 삼매화가 단단히 몸단속을 해도 그런 따위 궁녀는 왕의 성정 앞에서 한갓 티끌일 터이다.

“삼매화야, 내 소원은 강동江東의 여러 땅을 넓혀 요동벌을 내 나라로 만드는 일이다. 이는 태조마마께서 나라 이름을 고구려에 잇는 고려로 제정하신 바를 내가 이루어야 하는 소이로구나. 그러자면 왕도를 서경으로 천도해야 한다. 개경은 이미 부왕마마의 조국肇國으로 지덕이 다했다.”

왕은 한숨마저 내쉬었다. 그 한숨은 한 젊은 궁녀 앞에서 내쉬기에는 너무나 위엄이 없었다.
“또 내 소원은…….”
“…….”

그때 내시의 아뢰는 소리가 들렸다.
만작晩酌의 음상飮床이 차려져 왔다.
이런 풍경은 삼매화가 아니라도 어느 궁녀나 왕의 어신御身을 접할 밤에는 앞대가리로 차려진다.
삼매화도 왕의 밀지라고는 하나 다른 궁녀가 불려 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녀는 바른무릎을 죽여서 송자宋磁 소주배蘇州盃에 술을 따랐다. 술이라기 보다 향기였다.
세상을 뜬 그녀의 아비는 죽을 때 술 한 모금만! 술 한 모금만! 하고 뇌까리다가 숨을 꼴깍 삼켰다. 술 세가 너무나 벌세罰稅여서 술을 다 말린 시절이었다.
막걸이 한 사발 소원도 못 풀고 그녀의 아비는 간 것이다.

왕은 말문을 닫아 버리고 술 석 잔을 넘기고는 삼매화 앞에 그 빈 잔을 놓았다.
“내 술 한잔 딸고 싶다.”

그녀는 그냥 몸이 굳어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왕의 눈길이 처음으로 곧게 치켜떠졌다. 삼매화는 죽은 왕비가 처음으로 상감 앞에서 이러했으리라는 생각이 번개치며, 언니의 뒤를 따르자고 다졌다.
술잔을 들었다. 눈을 꼭 감았다. 처음으로 마시는 술이었다.

"으음, 장차 이 나라에 술꾼 하나 생기겠구나. 하하.”

왕은 만족하게 웃었다. 삼매화의 몸은 뱃전에 물결을 맞는 듯이 덥게 일렁거렸다.
목 안이 뜨거웠다. 그때 별안간 왕이 그녀의 아리따운 손목을 잡았다.
이와 동시에 그녀는 머리를 숙여 “마마, 죽여 주옵소서” 하고 부르짖었다.
“무엇이라고?”
왕은 잡은 손목을 놓아 버렸다.
“방금 네 말이었더냐?”
“그러하옵니다.”
“그 무슨 뜻이냐?”
“마마의 분부 천녀賤女 받들지 못하겠사옵니다.”
“무엇이라고?”
“…….”
“허허, 내 육진 성 쌓기보다 어려운 밤이로구나. 시중侍中의 왕비 간택을 금하고 내 손수 너를 오늘밤 불렀는데 네 복덕이 여기서 머물고 마는구나.”
“황공하옵니다. 황공하옵니다.”

왕은 뜻밖에 온화했다. 죽은 왕비에 대한 충성스러운 영화전 궁녀라고 그는 잘못 생각한 것이었다.
“꿈에 왕비가 헌신하시느냐?”
“예.”
삼매화는 눈물이 나면서 거짓 대답을 해버렸다.
“오늘밤도 나 혼자 취하겠다. 물러가거라.”

삼매화는 죽음을 각오하고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그녀가 어전을 물러나 복도에 이르렀을 때 장화전長和殿 궁녀 소슬아기가 대령해 오고 있었다.
꿩 대신 닭이 미리 예비되었던 것이다. 내시 놀음에 왕이 놀아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불온한 내시 속담에 ‘불알 없이 불알 쥔다’라는 말이 있다.

이런 짐작이라면 삼매화는 내일 아침 일찍 여염문閭閻門 밖의 궁녀 입적당入寂堂에 갇혀 사약을 받고 죽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녀는 어떻게 돌아왔는지 모르게 영화전 별궁에 와 있음을 깨달았다.
몸이 물에 빠진 듯하게 땀으로 적셔져서 항라 적삼이 가슴과 등에 맞붙어 버렸다.
별궁 궁녀들이 깊은 걱정으로 그녀 앞에서 물러날 줄 모르고 있었다.
“아기들 물러가거라.”
“예.”

그때에야 앵무 같은 복창을 남기고 미닫이를 여닫았다. 남색 갑사치마 끝이 슬리는 소리가 났다.
그날밤 삼매화는 밤을 새웠다.
왕이 마랑부관음이라고 말한 일은 지공화상이 그녀더러 그렇게 말한 것과는 달리 저항을 일으켰다.

그녀가 죽은 왕비의 병을 물러나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외웠던 관음예문觀音禮文에 섬부지지음미선녀화류금쇄골陝府之止淫迷仙女化留金 骨이란 말이 있다.
관음 영험靈驗의 하나다. 이 영험 얘기는 다시 석씨계고략釋氏稽古略에 그 사연이 실려 있는 것이다. 아마도 지공화상은 그 사연을 가지고 삼매화를 바라본 것이리라.

당 원화元和 12년 관세음보살이 섬우陝右땅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미녀美女의 몸으로 나타났다. 그 땅의 총각들이 앞을 다투어 그녀와 혼인할 것을 바랐다.
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법화경 보문품普門品을 외우는 이를 남편을 삼겼다 했다.
다음날 아침 보문품을 외우는 총각이 무려 스물이나 되었다.
그녀는 다시 스무 사람을 다 남편으로 삼을 수 없으니 이번에는 금강경을 외우는 이로 남편을 삼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그런 총각이 열이나 되었다.
그녀는 다시 법화경 일곱 권을 사흘 만에 외우는 이를 남편으로 정하겠다고 했다.
그때 마씨 성을 가진 총각 하나만이 약속대로 법화경을 다 외어 냈다.
그녀는 그를 남편으로 맞이했다.
혼례식을 마친 여러 손님들에게 마씨는 크나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때 신부는 몸이 편치 않아서 잠시 방에 들어가 쉬겠다고 말하고 들어갔다.
얼마 뒤에 마씨 신랑이 뒤따라 들어가 보니 그녀는 시체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혼례 잔치는 장례로 변해 버렸다. 마씨 신랑은 난데없는 상주가 되고 만 셈이다.
어느 날 한 늙은 중이 육환장을 짚고 마씨를 찾아왔다.
마씨는 쓰라린 사연을 중한테 말했다. 늙은 중이 그에게 그녀의 무덤에 인도해 달라고 했다.

무덤에 가서 그는 무덤을 파게 하여 관을 열어 보니 시체는 온데간데없이 썩어 버렸고 오직 금쇄金 의 뼈다귀가 있었다.
늙은 중이 그 뼈를 들추어내어 이가 곧 관세음보살이라고 말하여 이곳 섬우땅 사람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미녀로 나타났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뒤 섬우땅은 관음신앙의 터전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관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음미淫迷를 깨우치게 하려고 선녀로 변신했던 것이다.

이 미녀가 곧 마랑부馬郞婦이며 팔만사천 보살의 화신의 하나인 것이다. 많은 관음 중에 마랑부관음이 들어 있는 것도 그때부터였다.
삼매화는 여느 때와는 달리 마랑부관음이 싫었다.
왕이 그녀를 마랑부라고 한 것은 지공화상이 그렇게 말한 뜻과는 달랐다.

첫째 왕은 그녀가 단 하룻밥의 왕비로 간택되었다가 그녀가 시체가 되어 버리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선왕 태조마마의 왕비, 부인夫人이 쉰 명에 이르렀을 때 서경의 귀족 김행파金行波나 광주 귀족 왕규王規는 각각 딸을 둘씩이나 태조한테 봉납하여 부인을 삼았던 것이다.
그때 김행파의 첫째딸이 부인으로 간택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는데 둘째딸 부인도 하룻밤을 새우고 시체가 된 일이 있다.

물론 죽은 왕비 영화전 인혜왕후仁惠王后와 삼매화는 재종으로 자매간이지만 태조마마의 김행파 두 딸과 비슷한 점도 없지 않다.
이런 얘기가 삼매화한테 늘어 붙는 것은 언젠가 태상사太常寺 경卿 이제도李濟度가 왕비의 친정할아버지 증시贈諡문제로 영화전에 왔을 때 주렁주렁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삼매화는 사경과 오경 사이의 신새벽에 신봉문神鳳門 시위대 파수 교번 때를 택하여 궁궐을 빠져나가기로 작정했다.
밤중에 불을 꺼버린 뒤에 몇 가지 옷가지와 패물을 더듬거리며 챙겼다. 밤중의 자욱한 풀벌레소리가 다 가라앉고 하나둘이 애처롭게 남아 있었다.
그녀는 그녀에게 아침 사약이 내려지리라는 예감이 들어맞을지 어쩔지와는 상관없이 그 예감으로부터 이 지긋지긋한 궁정살이를 그만두고 산문山門의 승방으로 가야 한다는 마음이 자맥질을 해댄 것이다.
이미 그녀는 고향으로 갈 수도 없었던 것이다.

“머리를 깍자. 보리普 를 구하여 이스의 업고를 다 불사르자꾸나.”

삼매화의 닦아내 버린 맨얼굴이 어둠 속에서 밖의 장명등長明燈 불빛이 바랜 창호지를 뚫고 나오도록 의지 덩어리로 굳어져 버렸다. 어느 곳에 잠이 올 리 없었다.
사경의 종소리는 없으나 오경의 종소리는 있다.
그 종소리가 나기 전에 그녀는 숲길을 가게 될지도 모르므로 단속곳 다리에 행건을 쳤다.
왕비를 모시고 현화사玄化寺에 오를 때 왕비 어가御駕를 뒤따르는 별궁 보살로 그녀는 승복을 입었던 적이 있다. 그때의 행건아었다.

삼매화는 일단 귀법사 태야왕사太夜王師를 목표로 정했다.
그 스님은 요즘 왕사라기보다 왕이 삼사三師를 싫어하면서부터 왕비들이 내전이나 후궁들의 위안거리를 돌보는 형편이었다.
그것은 왕이 대승 식렴과 하나가 되어 서경 천도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럼 왕식렴이 왕사나 대보 따위의 자문을 받는 왕을 싫어하므로 왕 자신도 왕사의 왕래를 뜸하게 제쳐두고 있다.

태야당은 특히 죽은 왕비의 불심을 치하했다.
따라서 그 늙은 도인에게 삼매화의 아름다움도 어여쁘게 다가든 것이다.
그녀는 그 스님이라면 한동안이나 몸을 숨길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 태야당을 찾아뵙고 바로 개경에서 멀리멀리 떨어져 있는 승방으로 보내어지는 서찰 하나만 받으면 되는 것이다.

문득 그녀는 귀법사보다도 지난날 영화전의 침모였던 극락화보살네 집에 우선 피신 처소를 정하고 귀법사에 올라가기로 했다.
거란 침입의 허보虛報에 깜짝 놀란 궁중 만월대의 성 높이는 10척이나 되었다.
2척이 더 올려진 것이다. 그러니 하늘을 나는 재주로도 월담은 불가는하다.
천상 파수 교번 무렵의 잠깐 사이를 이용해야 했다.
벌써 삼경 때부터 서 있던 신봉문 시위 파수들은 지칠 대로 지쳤다.

요즘은 광군사 강화로 인해서 궁중 시위 병력까지 차출되어 나가 각 성문 파수 교대도 장시간 근무로 충당되었다. 신봉문 바로 옆에 금군禁軍 동위사東衛司 분소가 있다.
새로 온 파수대와 교번하기 위하여 잠깐 동안 분소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때 삼매화는 그 분소 출입구 아래로 내려가서 성문 옆의 하수下水를 타고 성밖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삼매화는 모든 것을 걸었다.
새벽 성문을 빠져나가서 다시 한번 외위군外衛軍 파수대를 피하기는 성안에서보다 쉬웠다.
극락화보살의 집은 신봉문에서 십릿길의 마을에 있다.
새벽에 들이닥친 젊은 궁녀를 보고 늙은 침모는 말없이 뒷방으로 안내했다.

이렇게 해서 삼매화는 국법을 크게 어긴 계집으로 바뀌었다.
궁녀가 도망친다는 것은 그런 예가 거의 없을 만치 혹독한 벌이 내려진다.
얼굴과 가슴, 심지어는 국부에 가해지는 야만적인 고문이 오래오래 지속되다가 다리를 짜악 찢어버리는 처형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것은 삼매화에게 왕의 사약이 내려지게 된 형편이 아니라도 궁녀 도망은 용납되지 않는 무서운 벌일 터이다.

삼매화는 늙은 침모 극락화가 바깥 동정을 살피러 나간 사이에 아직도 이 옷 저 옷을 정교하게 짓던 흔적이 남아 있는 침모의 방을 구경했다.
칼인두, 댓잎인두 그리고 눈썹인두 들이 몇십 개씩 벽에 걸려 있고 첫여름인데도 놋쇠 화로에는 화롯불이 다북다북 담겨져서 곱돌인두, 무쇠인두 서너 개가 꽂혀 있었다.
이미 눈이 어두워서 바느질은 짐작이지만 바늘에 실을 꿰는 일은 바늘귀에 대고 눈짐작으로 백번도 넘게 실끝을 찔러 보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극락화가 중얼거린 ‘제행무상!’이라는 말이 삼매화의 가슴을 찔렀다.

며칠이 지나서 삼매화는 귀법사에 갔다.
오르는 길을 피하여 다른 산길로 올라가서 귀법사 조실 염화당 뒤안으로 내려간 것이다.
절에서 키우는 노루들이 그녀를 보고도 달아나지 않았다.

태야왕사는 마침 궁중 오계五戒 계첩戒牒에 계명을 다섯 개 짓고 난 뒤에 문을 열고 멀리 남양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삼매화를 보고도 자연스러웠다.
이미 궁중의 옷차림이 아닌 삼매화는 너울도 쓰지 않았다.
왕사는 “나한테 한번 의논하고 떠날 일이지. 쓸데없이 궐내를 소연케 했구나” 라고 말했다.
그녀는 맨살의 고개를 숙였다.
단주 헤아리기를 그친 태야당은 벌써 궁중의 소식도 알고 있었다.

“삼매화, 괜찮다. 성상께서는 왕비마마의 입적入寂도 입적인지라 스스로 목숨 끊는 자매가 내 심중을 흐렸도다 하시고는 더는 일을 크게 벌이지 말라고 상서령尙書令한테 남다른 분부를 내리셨다. 아아, 삼계三界가 고를 날 없도다.”

그녀는 이제 그런 걱정 따위는 멀리 벗어났다.
이미 참모 극락화의 집에서 입산의 뜻이 다시 한번 다져져서 그 일만이 그녀의 눈썹 사이에 찍혀 있다. 그녀는 당돌하게 말했다.

“왕사 큰스님께 아뢸 말씀 있사옵니다.”
“…….”
“소녀 삭발 귀의하렵니다.”
“삭발?”
“네, 개경에서 먼 데 승방으로 보내 주사이다.”
“…….”

왕사는 온갖 위의를 다 두고 할아버지다운 소박한 인상으로 곧 벼루와 종이를 꺼내었다.
“흐흠, 이제 삼매화에게는 이 길 하나가 남아 있구나. 이렇게 가도 삼보三寶의 길이 나서기는 나서는 법 없지 않다.” 하고 말하고 나서 간찰簡札을 썼다.
겉에는 보현원 별암別庵 백우화상白牛和尙이라고 되었다. 보현원이라면 개경 성안의 절이다.

“선안이 아니어요?”
“발끝에 닿은 땅도 십만팔천 리란다.”

그녀는 더 말하지 못하고 그길로 보현원에 갔다.
백우화상은 야승野僧으로 늙은 90세 스님이었다.
삼매화가 별암 토굴로 그 스님을 찾아갔을 때는 저녁 무렵인데도 그는 흐드러지게 기나긴 낮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아뿔사.”
“웬년이 내 열반을 깨워 버리냐?”
“저어…….”
“저어 저어가 뭐냐. 네 애미 배 위에 타고 배를 휘젓는다 그 말이냐. 에끼, 이년.”

삼매화는 얼굴이 화뜩화뜩 불에 데는 듯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소녀, 태야왕사의 서찰을 모시고 왔습니다.”
“에끼, 이년. 어린 게 늙은 중이나 붙고 다니느냐?”
“…….”

백우화상은 이런 험담을 하면서 서찰을 읽고 나자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서찰을 구겨서 내던졌다.
“미친 녀석. 왕산가 구산가 되어가지고도 나를 성가시게 구는구나. 네가 삼매화냐?”
“예에.”

삼매화는 그때에야 정신이 나서 몸을 바로 세웠다.
“네년이 중이 되겠다는 게냐?”
“예.”

백우화상은 하이얀 눈썹에 사나운 노기를 띠고 삼매화를 삼켜 버릴 듯이 쳐다 보았다.
그녀는 온몸의 옷과 속옷이 강제로 벗겨져 버리는 그런 아픈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꽉 메워졌다.
한동안이 흘렀다. 백우화상은 벌떡 일어났다.

“흐흠, 예쁜 년이로다” 하고 말하고 나서 다시 도로 누워 버렸다.
토굴 안은 지저분했다. 삭정이, 솔까리 따위도 흩어져 있었다.
“예쁜 년은 중노릇 못한다. 어서 가거라.”

그녀는 허리띠의 채색 끈에 달린 금방울을 떼어 냈다. 그
것은 그녀 자신도 모르게 손에 사나운 힘이 들어가서 그렇게 된 것이다.
“소녀, 중이 되지 않고서는 여기서 물러갈 수 없사옵니다.”

그러자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년아, 너같이 예쁜 년은 어서 가서 술이나 따라라. 어서 가서 생명주 속바지나 벗어라.”
삼매화도 지지 않았다.
“부처님 앞에 가서 벗겠습니다.”
“네년의 낯짝을 거란 놈들 여진 놈들한테 팔면 그놈들 창 녹슬고 화살촉 빠지겠다. 그런 데나 팔려 가거라. 이놈의 석씨문중釋氏門中은 네년 따위 받을 데 없다.”

아름다움이 참패당하는 일이 보현암 토굴에서 일어났다.
삼매화는 그녀의 얼굴을 쥐어뜯고 할퀴어 버리고 싶었다.
향유도 바르지 않고 연지 곤지도 안 찍는 귀부인의 화장 솜씨대로 그녀의 맑고 화사한 설부雪膚, 영롱한 눈과 무거운 눈썹, 달뜨는 이마, 그리고 그녀의 황홀한 몸 전체는 잠꾸러기 백우노장한테 여지없이 거절당했다.

그녀는 허락될 때까지 그곳에서 떠나지 않으리라는 고집을 꺾어 버렸다.
그러면서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화가 치밀었다.
차라리 마랑부관음이라고 얼러대던 왕에게 하룻밤 왕비의 꿈이나 바쳐 버릴 것을…… 언니 왕비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불쌍한 상감마마를 실컷 어루만져 주고 빨아 주고 껴안겨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것을…… 실인즉 왕의 침전 술자리에서도 삼매화는 몇 번 이런 생각이 일어났던 것을 가슴속에서 짓밟아 버렸다.

삼매화는 암자를 말없이 물러나왔다. 침모 극락화는 걱정스럽게 그녀를 맞았다.
대접다리미에 이글거리는 숯불이 있다.
그 다리미가 여름 소실들의 새 옷을 다리는 것이다.
늙은 침모는 아직도 여기저기 내밀한 옷 주문을 받아서 살아가고 있다.

며칠 뒤 아주까리기름을 먹어서 실컷 설사를 해버린 뒤 삼매화는 다시 보현원 별암 토굴로 갔다.
백우노장은 입정入定하고 있었다.
입정이 끝날 때까지는 저녁나절이 다하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멀리 개경성 안에서 신기대神旗隊 행렬이 있는지 초금(茄)소리와 징소리, 북소리가 어울려 들렸다. 그 소리는 아득하여 저 세상의 소리 같았다.

그녀는 개경 쪽으로 눈길을 팔고 있었다.
“그렇다. 말 타고 노복과 청개靑蓋 따르는 귀인의 처지는 내 처지가 아니다. 내처지는 사미니계沙彌尼戒를 받고 부처님께 보살님께 그리고 억조중생 고해에 귀의하는 일밖에 없다. 부처님! 소녀를 가피하소서.”
그런 말을 입을 달삭이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느닷없이 백우노장의 호통소리가 났다.

“네 이년! 백년 묵은 여우 같은 년이 뭣하러 또 왔느냐. 네 낯짝 가지고는 신중년이고 보살년이고 어림없다. 썩 물러가거라.”
“노스님!”
“물러가거라. 일만 사내 간장이나 녹이다가 쑥대머리 덮이렷다. 가거라.”

삼매화는 입술 한군데를 물어서 찔껑 피 한 모금을 입 안에 담았다.
입술은 쓰라리고 입 안은 짭짤한 비린 맛으로 도배되었다.
그녀는 어둠이 끝없이 새끼치는 초저녁에야 발등과 무릎을 다치며 어두운 산길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참패당했다.

며칠 동안 그녀는 침모의 뒷방에서 몸져누웠다.
이틀 만에 겨우 미음 한 그릇을 떠 넣었다. 이제까지 아무런 말도 않던 극락화가 어머니답게 말했다.

“꼭 삭발 수계해야만 불자가 되겠수…… 고향이 멀지 않은 개풍고을이니 임진나루 건너가 소쩍새와 살 수 없으실까. 이제는 궁중에서도 삼매화보살을 더는 찾지 않을 게니 고향에라도 가는 게 어떻겠수?”
“보살님, 나는 고향이나 부모 잃은지 오래여요. 언니마마의 부르심을 받은 그날부터 나는 죽은 셈이어요. 그런 내가 어찌 불문佛門 말고 다른 데서 살 수나 있겠수.”

삼매화는 삭아 버린 대접다리미의 숯불의 잿빛을 구슬프게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틀 동안 뒷방에만 있다가 나와서인지 머릿속에 아지랑이가 피어 어지러웠다.
극락화는 이제까지 숨겨 둔 것을 말했다.
“대승께서 돌아가셨다 합니다.”
“뭣이? 왕대승이?”
젊은 삼매화는 깜짝 놀라면서 궁중의 말씨로 외쳤다.
“급병이었다우” 하고 침모가 말했다.
“벌써 열흘도 넘은 소식이지 뭐예요…… 그런데 성상께서는 왕비마마 승하하셨을 때보다 더 상심하셔서 아직껏 기동을 잘 못하신대요.”

삼매화는 놀란 것과는 달리 차감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마마께서도 이제 수족이 없어지셨구나.”

이제는 삼성육부三省六府나 칠사七寺의 공경대부들 가운데서도 그동안 가라앉았던 왕대승 반대세력이 홰를 칠 터이다.
그렇게 되면 그 세력에 뒤따르는 각 관직은 물론 가혹한 부역과 징발에 뼈가 으스러진 백성들도, 최승로崔承老의 상서에 씌어질 ‘군정불복群情不服’ 형세를 넓혀 갈 터이다.
왕의 서경 천도는 그때 수포로 돌아갈 터이다. 왕권도 위태할 터이다.

삼매화는 마랑부관음을 들추며 상심을, 한 궁녀의 미색과 취흥으로 달래려던 그날밤의 왕이 눈에 선했다. 문득 그녀는 궐내로 달려가 마마 앞에 대죄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망상을 친 것은 그녀의 출가를 결심한 집념이었다.
백우화상의 말이 다시 한번 그녀의 등짝을 때리는 것 같았다.
이년아! 네년 낯짝으로는 불법은 고사하고 술이나 따르고 잡년질이나 하렷다!

삼매화는 이제까지 몸을 남의 눈에 보이지 않았으나 이제는 누가 보거나 말거나 마구 뜀박질로 풀밭을 달렸다. 자운영 들판이었다.
들쑥이 자운영과 뒤섞여 우거졌다. 하늘은 높았으나 젖빛으로 팅팅 부어 있다.
그녀는 풀밭으로 나온 자유를 마음껏 마셨다. 거기서 곰곰히 생각한 결과 그녀는 더 이상 백우화상을 찾자 않기로 했다.
그 대신 한수漢水의 남경南京 쪽으로 가서 그곳의 승방을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웬만하면 지나는 길에 고향에 들러 아버지 산소라도 찾아보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비상한 계획이 생겼던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 뒤 삼매화는 극락화한테 쓰다 남은 헌 다리미와 칼인두 서너 개를 장차의 바느질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얻어서 봇짐을 챙겼다.
영화전 치모 시절에 유달리 삼매화와 정이 들었던 극락화는 이제 궁중 위계가 없어진 채의 어미와 딸같이 그동안의 피신생활을 지내온 것이다.

극락화는 삼매화의 패물로 금비녀 하나를 억지로 받았다. 늙은 침모 역시 마른 익모초가루 한 봉지와 금으로 된 세환細環 귀고리 한 쌍을 그녀에게 안겼으나 그녀는 익모초만을 받았다. 이제 남경 가는 길의 노자 말고는 어떤 패물도 장식물도 쓸모없다. 왕비한테 양주楊州 한수 기슭에 법명도 스승도 없이 없이 그들끼리만 공부하는 승방이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며칠 전 풀밭에서 떠올랐던 것이다.
삼매화는 곧 노새 한 마리를 패물로 빌렸다. 말서방까지 달려서 그녀의 여행은 수월했으나 그녀는 남복男服 차림이ㅣ었다. 임진나루를 거널 때 그녀는 고향 산천을, 아버지의 산소를 그냥 먼 풍경으로만 바라보다가 지나쳐 버렸다. 몇 번이나 말머리를 돌리고 싶었다. 다만 눈물이 그녀의 모든 것이었다.
그녀가 개경에 견줄 수도 없게 삭막하고 한가로운 양주고을에 당도해서 여태껏 찾아왔던 승방이 오래 전에 없어진 것을 알았다. 삼매화는 낭패였다. 그러나 이왕 양주땅까지 왔으니 뜻을 굽힐 수 없다. 뭣보다도 개경으로부터 양주까지의 닷샛길 밤낮으로 그녀는 관세음보살의 명호名號를 치열하게 불러 왔다. 이제는 날이 갈수록 귀의 신심이 뜨거워졌다.
도봉道峰의 원통전圓通殿에 범파梵坡선사가 있다는 어느 보살의 얘기를 들었다. 그곳은 승니僧尼의 구별 없이 비구 서넛, 비구니 두엇 그리ㅣ고 재가 신도 남녀 대여섯이 함께 사부중四部衆을 이루어 한마음으로 보리菩 를 구한다 한다. 우연하게도 그녀가 유숙한 여염집 노파가 그 절의 보살이었던 것이다.
그날로 삼매화는 거의 하룻길로 도봉까지 갔다. 험준한 산중이었다. 암벽이 수승하고 가파른 형세였다. 거기서 그녀는 개경에서 빌린 노새 일행을 돌려보냈다. 단신으로 산중에 파고들어 그녀가 단물이 목구멍에서 게워 나오도록 지쳐서야 원통전에 이르렀다. 밤중이라 후원의 지대방에 안내되어 죽어 버린 듯이 잠에 빠졌다. 새벽에 낯선 나그네가 왔다는 얘기를 들은 범파선사가 잠든 삼매화를 보고 간 것을 삼매화가 알 까닭이 없었다. “바람 한 자락 어여쁜 바람이구나” 하고 범파선사가 말한 것도 들었을 까닭이 없다.
이른 아침에 삼매화는 후원 행자가 흔들어서야 눈을 떴다. 삼매화는 얼른 시냇물로 나가서 몸을 씻고 그길로 원통전 조실에 올라갔다. 그녀는 무턱대고 중이 되려고 왔다고 말했다. 선사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인 채였다.
“어여쁘고나. 어여쁜 얼굴은 숨겨도 눈길을 끈다.”
“스님, 머리를 깎아 주옵소서.”
“어여쁜지고. 나 30년 공부했으나 미인을 보니 공부 다 먼지로구나. 너를 한번 품고 자고 싶다. 너는 네 얼굴이 그리 어여뻐서 중보다는 어화둥둥 내 님이로구나.”
“…….”
“세상으로 내려가거라.”
“어찌 불법에 미추美醜가 나누어지는 것인가요, 스님. 제발 소녀 머리를 깎고 세상을 버리게 해주옵소서.”
“내려가거라. 꽃에 나비가 다투리라.”
그녀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그곳에 꿇어앉기로 한나절이나 지난 뒤 별수없이 물러나왔다. 방 안은 선기禪氣로 냉엄했다. 삼매화는 처음으로 마음속에 고향 사람의 욕짓거리를 담았다. 그것은 하나의 결단이었다. 지대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다리미와 인두 서너 개를 꺼내어 거기에 후원 아궁이의 새빨간 불덩어리에 달구었다. 후원 보살이나 행자는 무슨 영문인 줄 몰랐다. 한 보살이 옷에 다리미질을 하려면 다리미 밑을 불에 달구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까지 늘어놓았다. 얼마를 달구자 다리미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그걸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악!” 소리를 질러대면서 그 다리미로 삼매화 자신의 얼굴을 문질러대었고 또 인두 서너 개로는 옷 속의 가슴팍을 미친 듯이 지져대었다. 누가 그렇게 했는지 몰랐다. 누가 그녀의 얼굴과 가슴의 아픔이 온몸을 나뒹굴게 했다. 당황했던 보살이 물 한 동이를 가져다가 삼매화의 몸에 퍼부어 버렸다.
그녀에게는 캄캄한 그믐밤의 아픔만이 남겨졌다. 아름다움이 아름다움 이상이었던 그녀의 그 아름다운 모습은 이제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추醜로 표변해 버린 것이다. 그녀는 아픔의 관세음보살만을 부르짖었다. 그 부르짖음에 의해서 원통전의 산 너머에 관음전이 새로 생겼다고 뒷날의 전설이 말하고 있다. 아픔과 관음은 그녀의 부르짖는 염불 속에서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곧 방선放禪의 대중이 후원으로 몰려왔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고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한 사람도 있었다. 삼매화는 괴롭기 짝이 없는 아픔과 함께 거의 기어서 조실까지 올라갔다. 비구니 두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그런 삼매화를 뒤따랐다.
조실의 문을 그녀들이 열자 삼매화는 흙덩어리가 툭 떨어지듯이 조실 방 안으로 뒹굴어 들어갔다. 범파선사는 눈을 크게 떴다.
“쓴님! 제 머리 깎아 주시옵소!”
“쓴님!”
그때에야 조실 범파선사는 마음을 놓았다.
“어여쁘고나. 어여쁘고나. 이 미색으로 너는 사문沙門에 들었도다.”
“쓴님!” 하고 삼매화는 외쳤다.
“……어여쁘고나. 전생의 어여쁨은 연기가 되고 이제 이렇게 법의 어여쁜 모습이 되었구나” 하고 말하고 조실은 비구니들에게 삭도削刀를 가져오라고 했다. 범파선사는 손수 삼매화의 머릿단을 부욱부욱 밀어내었다. 아픔과 기쁨의 술이 삼매화의 마음 가득하게 넘치고 있었다. 검은 머리채는 뚝 떨어져 방바닥을 덮었다.
이윽고 파란 중머리가 삼매화의 흉측한 얼굴 위의 대가리에 생겨났다. 그러나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의 젖골짜기가 그 백옥 같은 살결의 잉잉거리는 어지러움이 돼지울 바닥처럼 짓이겨진 아픔을 아무도 몰랐다. 아픔은 열흘 동안이나 이어지면서 차츰 식어 갔다.
원통전 간병실看病室의 하루하루를 삼매화는 험상궂은 짐승의 귀신 형용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러대면서 지냈다. 이제 그녀는 마랑부관음이 아니었다. 삼매화.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지옥地獄의 관음이었다. 그녀는 어느덧 잠들었다.
“언니! 언니! 언니도 이리 와요”라고 잠꼬대를 했다. 그녀는 흰구름 속에 두둥실 떠 있는 죽은 왕비 인혜왕후仁惠王后를 꿈 속에서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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