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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재발견

[서울] 눈 내리는 창덕궁

밤주막 2015. 3. 20. 18:43

눈 내리는 창덕궁

눈발이 날리고 잔뜩 찌푸린 날씨지만 모처럼 나선 구경길을 막을 순 없다

다만 뿌연 사진이 거슬리고 추위로 떨긴 했어도 이번 발걸음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에 좀 더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敦化門: 보물 383호)

간단한 창덕궁의 설명이다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이 1405년에 제2의 왕궁으로 창덕궁을 창건했다

그럼으로서 수도 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이,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 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재건되지 않았고,270여 년 동안 창덕궁이 조선 왕조의 정궁 역할을 하였고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사용된 최후의 궁궐이다.

동쪽의 창경궁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궐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1917년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들이 불타 없어지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다 옮겨 짓는 등 많은 변형,훼손,철거 되었다가 1991년부터 복원 사업을 진행해 조선 궁궐의 원형을 비교적 충실히 지니고 있으며,1997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첫 번째 마당에서 이어진 어도가 진선문을 지나 두 번째 마당을 가로지르고 있다

인정전 외행랑으로 둘러싸인 두 번째 마당은 극도로 단순화되고 절제된 공간이다

 

 

두번째 마당 왼쪽이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인정문 마주 보이는 문이 숙장문이다

이러한 공간적 절제 덕분에 마당을 가로지르는 어도의 방향성이 더욱 강조된다

이 마당은 북쪽의 인정문을 통하여 궁궐의 으뜸 공간인 인정전 마당으로 이어지고, 또한 동쪽 숙장문을 통해 궁궐의 깊숙한 영역으로 이어지는 전이의 공간이다

 

 숙장문 임금이 다니던 어도만 깨끗하게 눈을 치웠다

 

인정전 (仁政殿: 국보 225호 )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政殿)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국가의 중요 행사가 행해진

궁궐의 대표적 공간이다

이러한 행사 때에는 인정전 앞의 품계석에 맞춰 동쪽에는 문관이, 서쪽에는 무관이 중앙을 향해 도열했다

연산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임금이 여기서 즉위했다.

 

 

품계석(品階石)

정조가 재위 1년(1777년)에 세운 품계석(品階石)이 눈속에서도 신하의 도리를 다하는 듯 굳건하게 서있다 

 

인정전에서 임금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정문

인정전과 인정전 마당(조정)은 의식을 위한 공간이다

외국 사신의 접견, 신하들의 조하(朝賀), 세자 책봉식, 왕실의 큰 잔치 등이 이곳에서 열렸다

인정문을 통해 들어온 어도는 인정전 마당에서 삼도로 바뀌어 월대로 이어지며, 마당 나머지 부분은 모두 자연석으로 된 박석(薄石)을 깔았다

삼도 옆으로는 정조가 재위 1년(1777년)에 세운 품계석(品階石)이 두 줄로 세워져 있어 문신과 무신을 구분하며, 이 곳이 위계와 권위를 상징하는 엄숙한 공간임을 보여준다

 

 인정전 (仁政殿: 국보 225호 )

 인정전 내부

내부에는 임금의 자리인 어좌(御座)가 있고, 그 뒤로는 임금이 다스리는 삼라만상을 상징하는 병풍인 일월오봉도가 둘러쳐 있다

어좌 위에는 보개(寶蓋)라 하여 별도의 천장을 설치하여 어좌의 공간적 차별성을 극대화하였다

또 인정전의 천장 한가운데는 봉황을 조각하여 이곳이 임금의 공간임을 나타내고 있다

1908년 무렵에 내부에 서양식 가구와 실내 장식이 도입되어 전돌 바닥 대신 서양식 마루를 깔았고 전등이 설치되었다

국보 제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선정전 (宣政殿: 보물 814호)
선정전(
宣政殿)은 임금의 일상적인 집무 공간으로 쓰인 곳으로,인정전 바로 동쪽에서 인정전과 나란히 남향하고 있다

임금은 여기서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고 학문을 토론하며, 신하나 유생, 종친을 불러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으며, 중국과 일본의 사신을 만나기도 하였다 또 왕비나 왕족들과 크고 작은 연회를 열기도 하였다

선정전은 인조 반정 때 불에 탄 뒤 인경궁의 편전인 광정전을 옮겨 지은 전각으로,지붕은 푸른색 유리 기와를 덮었는데, 궁궐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청기와 지붕이다

인정전과 같이 의식을 위한 공간을 '정전'이라 하고, 선정전처럼 일상 업무를 위한 공간을 편전(便殿)이라 한

 

 

희정당 (熙政堂: 보물 815호)

희정당은 임금의 침실이 딸린 편전이었는데 선정전과 더불어 임금의 집무 공간이었다

희정당은 선정전보다 편안한 업무 공간으로, 선정전은 건물의 최고 위계를 나타내는 '전'(殿)인데, 희정당은 그 다음 위계인 '당'(堂)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나중에 어전회의실로 사용 되었다

 

 

 

 

 

 

대조전(大造殿)

대조전(大造殿)은 왕비의 생활 공간이자 임금과 왕비의 침전이었다

대조전은 왕실의 대통을 이을 왕자를 생산하기 위하여 좋은 날을 골라 임금과 왕비가 동침하는 장소였다

이 곳에서 인조과 효종, 순종을 비롯하여 성종이 승하하였으며, 순조의 세자로 나중에 추존된 익종이 태어난 바 있다

이 건물은 용마루가 없는데 이는 용으로 비유되는 임금이 잠자는 곳에 또 다른 용을 나타내는 용마루가 있으면

두 용이 충돌한다 하여 설치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동궐도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궁궐 그림이다

국보 제249호로 지정되어 있다(출처:창덕궁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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