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헬로지구촌산책

한겨레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본문

내마음을 움직이는 것들

한겨레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밤주막 2014. 2. 25. 18:17

 

소치의 반칙과 진돗개들의 난동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46

의연한 김연아, 당신이 ‘당선’을 뺏겼다면 어땠을까요
정부기관은 진돗개가 아닙니다…자율적으로 놔두십시오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스케이팅 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 22일치 한 칼럼은 우승자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를 ‘가장 미완성의 챔피언’이라고 지목했고, 은메달의 김연아를 ‘가장 강렬한 여성 피겨스케이터’라고 소개했습니다. 역시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소치 올림픽 피겨스케이팅은 “피겨가 아니라 수학”이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소트니코바가 더 많은 점수를 받도록 심판들이 머리를 쥐어짜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심판들은 피겨스케이팅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렸다”고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뉴스 전문 방송 <에이비시>(ABC)의 피겨 해설자 크리스틴 브레넌도 소트니코바의 미숙한 스핀과 연아의 완벽한 점프를 세세히 비교하며 문제를 제기했지요.

 

 

그런 논란 때문인지, 세계적인 인권회복 청원 사이트인 ‘체인지’에서는 정식 항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서명자만 벌써 200만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런 미국 매체들의 보도 탓인지 미국인의 92%가 이번 경기의 승자는 김연아였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밤마다 인터넷의 바다를 서핑하며 안현수 러시아 귀화 문제 등을 끄집어내 체육계를 한바탕 뒤집어놓았던 터이니, 박근혜 대통령도 상당히 분개했을 겁니다. 선수도 아니고, 심판이 반칙을 하다니….

그렇습니다. 이번 경기 결과가 세계인의 공분을 일으키는 것은, 다름 아닌 심판의 불공정한 판정, 심판의 반칙 때문이었습니다. 선수의 잘잘못을 따지고 반칙을 가려내야 할 심판이 특정 선수를 위해 판정을 편파적으로 했으니, 이들이 피겨스케이팅의 가치를 스스로 추락시켰다는 개탄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죄질에선 도박판 개설자들이 항용 벌이는 승부조작이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러나 이런 사태 속에서도 빛나는 것은 김연아와 어머니의 의연함이었습니다. 돌아서서 눈물을 쏟을 정도로 억울했지만, 김연아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의 권위를 지키고 그가 사랑하는 피겨스케이팅이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관용과 우아함을 보인 것입니다. 알다시피 소감을 묻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죠. “나는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라 피겨 선수 김연아로 기억되고 싶다. 나의 연기에 120점을 주고 싶습니다.” 저의 품격과 의지를 이렇게 멋지게 드러낸 표현이 또 어디 있을까요.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죠. “이제 연아에게 자유를 즐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장외에서 모녀가 보인 모습은 얼음판에서의 연기보다 더 멋지고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세계인이 연아의 은메달을 더 안타까워하고,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에 더더욱 분노하는 데는 그런 까닭도 있을 겁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박 대통령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심판의 불공정과 반칙에 의해 금메달, 아니 ‘당선’을 빼앗겼다면 당신은 어떻게 했을까요. 빼앗긴 사람의 입장에서 그 심정을 한번이나 헤아려 봤을까? 지나간 일이라고 눙치고 넘어가려 해선 안 됩니다. 만약 못 본 척 지나치면, 주최국이 어디냐에 따라서 그런 텃세는 되풀이될 것이고, 누가 여당 후보냐에 따라 그런 더러운 반칙과 공작이 되풀이될 것이니까요.

이 물음과 함께 두 가지 장면이 떠오릅니다. 먼저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 마지막날의 모습입니다. 국정원 요원들이 조직적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여론 공작을 벌인 사건에 대해, ‘댓글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건 민주당의 젊은 여성에 대한 납치·감금·인권유린 사건 아닌가’라며 치켜뜬 당신의 눈초리 말입니다. 섬뜩했습니다. 저럴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당신이 지휘하는 이 나라 검찰에 의해 수천 수만 수십만 건의 댓글, 리트위트 등 사이버 찌라시가 살포됐음이 확인됐는데도, 당신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판정은 엄격하고 객관적이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딴청부리는 올림픽 조직위원회처럼 말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장면은 이달 초 국무조정실 등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당신이 한 말이었습니다. “진돗개는 한 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안 놓는다. 우리가 (불공정의 정상화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국무조정실은 진돗개 정신이 필요하다. 진돗개 딱 한 마리를 그려 놓으시라.” 살점이 뜯어져 나갈 때까지…라는 대목에서 다시 섬뜩했습니다. 물론 규제 완화 등 특정 과제를 겨냥한 것이긴 하지만, 정부기관장들은 그렇게 들을 리 없습니다. 당신의 관심사에 대해 진돗개처럼 물고 늘어져라….

지난 1년을 돌아보십시오.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많은 말들이 쏟아졌지만, 그것들을 설명해주는 것은 이런 태도와 말이었습니다. 심판의 반칙을 덮기 위한 끝없는 억지, 그리고 불공정과 반칙을 드러내려는 이들에 대한 진돗개식의 끝장내기 공격, 이에 굴하지 않고 공정하게 국사를 처리하려는 이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 등. 결국 그들은 진돗개에 물린 것처럼 모두 살점이 떨어져 나가거나, 공직자로서의 생명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요즘 그 진돗개 정신이 극명하게 관철되고 있는 사건이 하나 벌어졌습니다. 탈북자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중국 정부의 기록까지 조작한, 유우성씨 간첩 증거 조작 사건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한 개인을, 그것도 탈북자를 간첩으로 몰기 위한 것이니 반칙치고는 너무나 치명적입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의 공문을 조작했다는 것이니 졸렬하기 이를 데 없는 반칙입니다. 거의 난동 수준입니다. 설마 이런 처절한 반칙을 요구한 것은 아닐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에 대해 한마디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취해온 자세를 돌아보면, 오히려 반칙꾼들을 응원하는 것 같기만 합니다. 그래야 개는 주인의 말을 더 잘 따르니까요.

그런 주인을 만났으니, 당신의 진돗개들은 참으로 안녕해 보입니다. 물으라면 물고, 물면 죽거나 나가떨어질 때까지 안 놓는 개들. 당신의 그 서슬 퍼런 눈짓에 따라 모든 흉악한 반칙을 저지르고 당신 앞에선 꼬리를 흔드는 그런 개들. 딱히 거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러시아는 그래도 염치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베스티’ 등 일부 매체들은 “김연아의 연기는 완벽했다. 그러나 심판들은 소트니코바에게 더 점수를 줬다. 김연아는 애석하게도 2인자였다”고 했답니다. 적어도 국가를 운영하는 집단이라면 최소한 그 정도의 염치가 있어야 합니다. 맹자는 인간과 동물이 다른 이유로 수치심, 곧 염치를 꼽았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염치를 모르는 개가 되기를 닦달하시니 참으로 딱할 뿐입니다. 권력기관의 정상화라면, 완장 차고 돌아다니며 불독처럼 으르렁대며 물고 위협하는 데서, 국민에게 엎드려 봉사하는 것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정부 기관은 청와대를 뛰어노는 새롬이와 희망이와 다릅니다. 그들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일하도록 놓아두시기 바랍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좋은 기사를 조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허락없이 전제하였습니다

Comments